http://minoci.net/notice/43 블로기즘의 이야기

링크의 글을 보면 황우석 사태와 블로기즘의 힘을 보여주고 있다. 그 논의의 화두에 있었던 나는 그 상황의 잠깐의 회고로 블로기즘과 민주주의를 이야기 하고자 한다...

(거창한 이야기가 아니라 민주주의를 대체할 만한 학자적 지식이 없습니다. 대체할 단어를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소외는 무엇인가.
나는 황우석 사태가 벌어졌을때 과학갤러리에 상주했던 찌질이였다. 그저 몇개의 과학이야기를 운운하거나 문제를 풀거나 이론등을 이야기하거나의 상태였다. (당시의 논의는 한군데 있지않고 여러군데로 포괄되어 있어서 과학갤러리라는 이름의 취지에 적합했다고 본다.) 뭐 그렇다고 그때에도 광신적인 누군가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그때에도 창조론을 주장하며 괴변을 늘어놓던 누군가가 있었고 그에 반해 그를 설득하려는 진화론자가 있었다. (진화론에 트집을 잡고 싶은 분은 과학갤러리로 가시면 됩니다 아직도 있으니까요) 그리고 PD수첩의 방영이 있었고 이슈는 그쪽으로 급격히 선회했다. 그리고 과학갤러리에는 이른바 황까와 황빠의 대립이 시작 되었다. 사건의 결론은 황빠의 패배로 끝이 났지만 결국 소외 된것은 황빠가 아니라 여러이야기를 두루 하던 찌질이였던 나와 다수였다. 물론 이슈가 아닌 이야기들은 관심을 받지 못하는것이 정상적인 흐름이고 그것을 부정하려는 생각은 없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니다.

돌아오는가 돌아오지 않는가.
싸움의 끝은 괴이 했다. 이른바 황까는 득의 만만한 상태를 유지했고 그 승리를 자축하는 글을쓰고 있었고 이른바 황빠들은 부정할수 없는 사실을 반대하며 반대하는 글을 계속 써나갔다. 한번의 이슈로 토론장은 토론의 상태를 잃었고 거기에는 황빠와 황까만 남게 되었다. 과연 사실의 승리는 통쾌했으되 부서진 토론장은 돌아오는가가 내 의문이었고 아직도 그것은 요원하기만 하다.

왜 돌아오지 않는가.
이슈 이외의 것에 대한 반응의 문제라고 요약할수 있다. 블로기즘도 그러하거니와 디씨에서 찌질대는것도 어떠한 반응을 기대하고 쓰는것인데 그 반응이 없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 하는가 일기장에 글쓰는것과 다를바 없다. 학생회의 시간에 일어나 이야기를 하는데 아무도 그 이야기를 듣지 않는것과 같은 행위가 그걸 발표자가 알게 되면 더이상 발표자는 돌아오지 않는다.


디워의 사태를 본 블로기즘

블로그는 과학갤러리가 아니다. 더 많은 의견과 더많은 주제들이 있다. 특정짓자면 힛겔정도가 되겠다. 전체 갤러리라고 하기엔 그 접근성이 매우 떨어진다 (솔직히 이글을 볼 사람도 얼마 없지 않는가?) 욕설이 어쩌내 하며 덧글을 차단하거나 어떠한 의견이 맞지 않으면 비난하거나 하는것은 황우석때와는 별반 다르지 않다. (내눈에는 다르지만) 블로그의 반응은 과학갤러리와 흡사했다. 찬성과 반대의 이슈가 첨예하게 대립되고 그외의 이야기들은 블로그 스피어에서 소외되다 시피 했다. 물론 디워 논쟁은 금방 끝이날 이야기 이다. 내가 우려하는 것은 이야기의 끝이 아니고 끝이난 후의 문제이다. 이사태에 가장 깊숙히 개입했던 블로거나 관찰자적인 블로거나 디워 논쟁의 이전의 상태로 돌아올것이냐 하는 문제말이다. 디시는 이것을 쉽게 해결할수 있는 방법이 있다. 익명의 사용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닉네임을 바꾸거나 하는 방법으로 자기의 이야기를 할수도 있다. 어쨋든 회복이 된다는 것이다.(물론 그렇게 되지 않았지만) 블로거들은 실명제를 사용하고 본 이름을 그대로 쓴다. 그럼 디워에서 벌어졌던 편견이나 혹은 오해는 다른 이슈나 이야기에 까지 영향을 줄것인가? 나는 몇몇 블로거들은 블로깅을 그만두거나 또 덧글의 허용을 로그인한 자만 가능하게 바꾼것을 유지할것 같다.


블로거의 소통 이란

위에도 말했듯이 블로그는 디시가 아니다 그래서 디시에서의 소외와 블로그의 소외는 약간 다르다. 블로그의 소외는 블로거 자신이 할수도 있고 (비공개나 덧글차단등) 블로거들에 의해서 벌어질수도 있다. (링크차단,제거 구독중지 등) 나는 이사태로 그러한 일이 생기지 않길 바란다. 이슈는 이슈였고 논쟁은 논쟁이다. 물론 의견차가 맞지않아 심하게는 욕까지 오고 갔을 경우도 있다. 그러나 이 이슈로 이러한 원래의 소통이 마비 된다면 결국 위에 말한 디시의 결과와 다를바가 없게 된다. 그리고 그결과는 다음논쟁에 더 큰 악영향을 주게 된다. (지금 디워를 논하는 사람들이 황우석 사태를 논하듯이 말이다.) 논쟁의 끝은 승패가 아니라 각자의 의견을 들은것이고 그 의견의 정리다. 물론 그 의견에는 옳은것도 틀린것도 있을것이다. (절대적 관점에서의) 그렇다고 해서 논쟁의 주체가 아닌자가 그 의견의 모두를 책임져야 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막말을 한뒤에 넘어가자고 하는것은 잘못된것이다.)

덧 > 8.15
디시에서 발견한 좋은글 (원문 삭제 우려가 있어 링크 포함 글을 가져옵니다 출처는 잘 모르겠네요)

http://gall.dcinside.com/list.php?id=news&no=377354&page=1&search_pos=-372246&k_type=0100&keyword=%EC%A7%84%EC%A4%91%EA%B6%8C

개인이 스스로 존립할 수 있는 하나의 자아가 되지 못하고 집단 뒤로 숨어버리는

그곳에 전체주의는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다. 전체주의는 개인을 인정하지 않기에,

국가나 민족 각종 그럴 듯한 명분을 내세워 '이렇게 해야한다'를 강요하고,

'다른 것'을 '틀린 것'이라고 억지를 쓴다. 애국심 앞에 모든 것을 버리라고 강요하는

과도한 국가주의나, 민족의 제단 앞에 세금 900억쯤(5천억 플러스 알파)은 기꺼이

던지겠다는 분별을 잃은 민족주의 등은 언제든 전체주의로 흐를 위험을 안고 있다.

 

그동안 좌파 지식인들은 위와 같은 주장 아래 '극우 문화 비판'을 해왔다. 유시민이

국회 등원 첫 날 면바지를 입고 나타나서 '왜 꼭 양복을 입어야하느냐?'며 기존의

권위에 도전하고, 진중권이 황우석 파문이나 디워 열풍에 '애국질 하지 말라'고

비웃으며 가르치는 것은 모두 같은 발상에서 나왔다. 노 대통령이 막을 서슴지

않는데도 '시원하다. 할 말을 했다'며 좋아하는 사람들은 어느새 권위의 파괴

그 자체를 즐기는 지경에 이르렀다.

 

식민지에서 해방된지 얼마 안된 신생국가가, 끔찍한 전쟁을 치렀고, 군사정권이

들어선 역사적 상황 때문에, 애국심이 과도하게 강조된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문맹률 95%가 넘는 세계 최빈국 국민들에게 '민주시민'을 말한다는 것이야말로

코미디 아니었을까? 세계 어느 나라도 좌파 지식인들이 만족할 만큼 내셔널리즘

에서 자유로운 곳은 없다. 그것은 국가가 존재하는 한 어쩔 수 없는 부분이다.

비판은 필요하지만 그 비판에도 한계가 있다는 말을 하고 싶은거다.

 

진중권은 정당한 비판을 하는데 억울하게 얻어맞고 있는 것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누구도 진중권의 '비판할 자유'를 침해하고 있지 않다. 100분 토론에 출연하는 것을

막은 사람 없고, 지금도 여기저기 인터뷰하고 다니는 그를 저지하는 권력도 사람도 없다.

그는 지금 '비판할 자유'를 최대한 누리고 있다.

 

정작 침해당하는 것은 '내 돈 내고 내 시간 써서 <디워>를 보고 즐거워 할 자유'다.

비평가가 '허접한 쓰레기 영화다'라고 말하면 그 영화를 보지 말아야할 의무 따위는

대한민국에 존재하지 않는다. 비평가가 허접하다 해도 '무식한 내가 보기엔 괜찮다'고

말할 자유도 잘난 평론가의 '비평할 자유'만큼 중요하다. 진중권이 마치 피해자인양,

부당한 압력에도 할 말은 하는 양 자신을 가장하지만, 정말 사과를 받아야할 쪽은

'어찌 감히 내 앞에서 <디워>를 재밌다고 말하느냐!'는 오만함이 정당한 비평으로

둔갑해 실실 웃으며 바보 취급하는 모욕을 당해야했던 수 백만의 관객들이다.

 

<디워>는 정치적 메시지를 강요하지도 않았고, '불륜도 사랑이다' 따위의 도덕적

해이를 가져오지도 않은, 그저 방학 때 아이들 보여주기 괜찮은 영화일 뿐이다.

그런 영화를 높이 평가하면 절대 안되는 것인양 자신의 결론을 강요하는 것이야말로

파시즘적 발상 아닐까? 작품에 대한 비평가들의 평가는 작품 자체에 머물러야지

'그 작품에 대한 다른 평가'를 싸잡아 폄훼해서는 안된다. 내가 쓰레기라고 생각하는

영화를 남들은 얼마든지 잊지 못할 추억으로 즐길 수 있다는 가능성 자체를 인정하지

않는 것이 '파시즘' 아니고 뭘까?

 

나는 영화 <웰컴투 동막골>, <효자동 이발사>, <화려한 휴가>가 아주 못마땅하다.

<똘이장군>이 못마땅한 것과 똑같은 이유에서다. 하지만 '동막골'을 재밌게 봤다는

사람을 비웃지는 않는다. '그 영화의 공상적인 메시지가 좀 거시기 하잖아?'라고

'비평'을 하면 '그게 좀 그렇지'하며 동의하는 사람도 있고 '걍 재밌게 보는거지 뭐'

라며 시큰둥하는 사람도 있다. 나는 그들의 '다른' 반응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구나 자기만의 해석을 할 수 있는 것이고, 정답이란 애초에 없는 것 아닌가?

 

386세대는 늘 세상에 대해 '정답'을 손에 쥔 것처럼 살아왔다. 그래서 자기들의 생각과

다른 이야기가 나오면 감정적으로 흥분하고 주체할 수 없이 말을 쏟아낸다. '예수천당

불신지옥'처럼, '내 생각은 진보 개혁, 네 생각은 수구 꼴통'도 억지다. '운동권 파시즘'은

자기가 옳다고 너무나 굳게 확신하기 때문에 자신과 다른 생각은 '악'으로 몰아세운다.

진중권이 군사정권 대신 네티즌들을 '가해자'로 만들고 스스로를 억압당하는 용감한

지식인인양 포장하는 것은, 수구좌파들의 새로운 생존전략 같다. 하지만 386 세대의

한심하기 짝이 없는 위선을 캠퍼스에서 두 눈으로 목격한 70년대 아이인 내게는

'대한민국에 정말 사람이 이렇게도 없나?'하는 탄식만 나올 뿐이다.

 



Posted by 시퍼렁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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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침없이 타이핑

  1. 2007/08/07 23:43
    소위 황우석사태가 벌어지기 전에 과갤에서 눈팅을 한적이 있습니다. (사실 제 주된 서식지 -그것도 눈팅뿐이긴하지만-는 과갤은 아니었습니다..^^; )
    언제부터인가 과갤이 황우석사태의 중심지가 되더니 황우석갤로 돌변해버린 것 같더군요..
    그 뒤 얼마전에 다시 구경가보니 이제는 좀 덜한거 같던데.. 황우석 사태이전의 분위기는 아니었지만 어느정도 회복이 된거 같더군요.
    왠지 뭐랄까..
    대멸종 이후의 생태계의 회복이 이런 과정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획일적이 되버렸던 생물계가 다양성을 회복하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 2007/08/08 02:29
      댓글 주소 수정/삭제
      "획일적이 되버렸던 생물계가 다양성을 회복하는 과정과 유사하다는 느낌이었습니다.."

      정말 마음에 드는문구입니다.
  2. 2007/08/16 09:46
    진중권씨의 100분 토론은 화가 났지요.. 그 논점에 대하여 분노하기 보다는 태도와 그런 이슈가 토론거리가 되는가? 라는 MBC와 진중권씨의 태도가 짜증이 났습니다...
    물론 저는 디워를 못봤습니다만, 토론을 토론 자체로 즐기거나 의견을 모아 보는 취지의 느낌이 아닌 그냥 흐트러 뜨려 버리는 토론이란것 자체가 주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고 좋은 방향이나 결론을 도출하기 위한 과정인데도 불구하고 그날의 100분 토론은 Dog-WAR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트랙백을 걸어도 될런지..=ㅅ= 사실 100분 토론에 대한 것이어서.. 토론이란 것 자체가 민주주의적인 것이니.. 나쁘진 않겠군요..살짝 걸고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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